텅 비어있던 숲이 놀이터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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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천장산 자락에 있는 의릉은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보호구역으로 관리되고 있다. 덕분에 의릉 주변은 개발제한지역으로 묶여 개발하지 주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제법 넓은 부지 중에는 '의릉 앞 솔밭'이라 불리는 작은 소나무숲이 있다.  의릉이 석관동의 자랑거리이자 소중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긴 하지만, 이 때문에 주변이 개발되지 못하고 저층주거지로 머물러 있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주민들도 있다. 실제로 석관동과 인접해 있는 동대문구 신이문동은 고층빌딩이 많은 상업지역으로 성장하고 있으니, 주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이해가 간다. 애증의 공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석관동의 작은 쉼터로 몇몇 주민들이 이용하던 이 곳에 지난 달부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올 해 6월 부터 시작한 도시재생 희망지사업을 통해 의릉 앞 솔밭 구역을 '의릉 앞 정기 놀이터'로 구성하면서부터다. 석관동 내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을 문제삼던 주민들은 놀이터를 조성할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과 자원이 부족한 것을 깨닫고, 마을 안에 활용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의릉 앞 솔밭이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좋은 환경을 가졌다고 판단, 놀이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힘을 합친 것이다. 놀이터라고 하지만 미끄럼틀, 그네, 시소 등 놀이기구가 있는 보편적인 놀이터가 아니다. 숲에 특정한 구역을 지정하여 지역 도서관, 부모 커뮤니티, 보육반장, 관내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교육콘텐츠를 가진 사람들이 숲 속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아이들은 자유롭게 숲 속의 놀이터를 즐기는 생태 놀이터에 가깝다. 

물론 기획하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 먼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훼손될까,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는 관리소를 설득하는데 활동가와 주민들의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또한 충분치 않은 희망지 사업 예산 문제, 홍보 문제, 자연훼손 문제 등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다. ​

많은 걱정 속에서 시작한 첫 의릉 앞 정기 놀이터는 그 동안의 노력을 보상이라도 하듯, 대 성공을 거두었다. 공원에서 쉬시던 어르신들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고, 동네 주민들도 아이들이 뛰어놀게 두고 피크닉을 즐기고, 무엇보다 수십명의 아이들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신이 나 뛰어노는 장면을 보니 "정말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에서 활동하다보면 "도시재생은 시끄럽기만 하고 변하는 것은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텅 비어있던 숲이 아이들의 공간이 되었다는 것, 막대한 물리적 비용과 이해관계가 얽힌 놀이터를 주민들의 힘으로 만들어냈다는 것, 말로만 공공의 공간이라던 곳이 정말로 주민들의 공간이 됐다는 것을 보고 어찌 변화라고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처럼 도시재생은 기존의 파괴 -> 탄생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의 가치를 확인하고 멋지게 활용하는' 더 나은 변화의 방식이다. 

시작과 끝이 있는 석관동의 도시재생 희망지 사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주민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만들어낸 자신들의 공간, 의릉 앞 정기 놀이터는 앞으로도 주민들의 것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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