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보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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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활동가로 일하다보면 사업이나 프로그램 등을 홍보해야할 일이 자주 생긴다. 경중에 따라 온라인, 홍보부스, 소식지, 현수막, 입소문 등 다양한 홍보수단들이 전략적으로 동원된다. 하나하나 다 장단점이 있는 홍보수단들이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도 주민들이 가장 많이, 또 가장 문턱없이 접근할 수 있는 홍보수단인 홍보 포스터(이하 벽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벽보를 붙이는 것은 평범하고 단순한 홍보방식이지만, 들여다보면 상당히 고된 일이다. 먼저 홍보할 내용을 담은 홍보물을 디자인하는 것부터 만만치 않다. 최대한 눈에 잘 띄는 디자인을 적용하고 적은 글로 많은 내용을 담아내야 하는데, 전문가가 아닌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디자인 작업을 마치고 벽보를 인쇄하고나면, 이제 마을 어디어디에 벽보를 부착할지 지도를 보면서 미리 생각한다. 대개 마을 큰 길, 횡단보도, 사거리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 주요 부착지이며, 홍보하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집중적으로 부착해야 할 지역을 미리 설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멋진 홍보물과 그럴듯한 전략을 가지고 나간 현장에는 항상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이 있다. 

 

첫째는 벽보를 붙일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경우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눈에 잘 띄는 공간을 찾아내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흔히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 도로나 사거리에 오히려 공간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근처 상인에게 협조를 구하고 벽보를 붙이거나 하는 등 적극적인 방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둘째는 벽보를 부착하려는 곳의 환경이 좋지 않은 경우다. 특히 쓰레기 문제가 심각한 지역에는 쓰레기를 버리면 xx해버리겠다고 경고하는 표지판이 붙어있거나, 구청에서 시뻘건 쓰레기 불법투기 경고문을 붙여놓은 경우가 있다. 이런 지역에는 정말 눈에 잘 띄는 좋은 장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벽보를 부착했다가 역효과를 볼 것이 십상.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다. 

 

 

(이런 지역에 포스터를 부착하는건, 포스터의 가치를 떨어뜨리거나 쓰레기를 투기를 조장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셋째는 경쟁자들이다. 좋은 자리들에는 이미 마트, 헬스장, 학원 등 다른 업체들의 홍보물이 가득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우리가 공익적인 내용을 홍보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붙어있는 벽보들을 떼고 붙일수는 없는 노릇이다보니 애써 빈 공간을 찾아서 붙이거나 부득이하게 오래된 벽보들을 제거하고 붙이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는 나름대로 마음을 쓴다고 노력하는데, 누군가가 붙인지 얼마 되지 않은 포스터를 훼손하거나 자신들의 홍보물로 덮어버린다는 점이다. 활동가도 사람인지라, 애써 만든 포스터가 손상되는 상황을 계속 겪다 보면 마음이 상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점 공격적으로 포스터를 붙이면서 "평화보다 전쟁이 편하네!"를 외치는 자신을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붙이다보면 언젠간 진짜 벽보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혹은 이미 전시 상황일지도!).

 

 

(누구나 자신의 홍보물이 가장 돋보이길 원한다. 그래도 조금의 배려와 양심이 있다면, 전쟁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더니, 포스터 붙이는 일조차 이렇게 어렵다. 그래서 같은 고통을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게 될 활동가들을 위해 햇병아리 활동가가 땀흘려 얻은 두 가지 노하우를 공유한다. 

 

첫번째 노하우 : Location, Location, Location

 

부착 대상지역의 지도점검은 필수. 포인트에 붙인 한 장의 포스터가 애먼곳에 붙인 열 장의 포스터보다 낫다. 포스터를 인쇄할 때도 '일단 많이 뽑자'는 생각보다는, 먼저 지역 내 전략적인 위치가 어디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수량을 결정할 것. 

 

 

(주로 사거리, 대로변, 상권 중심지 등이 주요 지점이며, 홍보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전략이 바뀔 수 있다)

 

 

두번째 노하우 : Design 

 

예산이 있다면 무조건 전문업체에 포스터 디자인을 의뢰하는 것이 좋으나, 활동가가 직접 포스터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좋은 포스터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안해볼 수 없는데, 직접 경험한 바로는 아래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포스터를 좋은 포스터라고 할 수 있다.

 

- 주변 경관을 고려한 디자인 : 마을은 대체로 회색, 갈색, 초록색이 어우러져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포스터들은 형형각색으로 빛나는 디자인을 하고 마구잡이로 붙어 있는데, 이렇게 주변 경관을 해치는 포스터들은 오히려 매력이 반감된다. 디자인을 할 때부터 하늘색, 연두색, 연분홍색 등 마을 환경과 어우러지는 색상을 고려한다면 주민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 간결한 디자인 : 글자는 클수록 좋고, 내용은 적을수록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스터의 제목만 슥 보고 지나간다. 따라서 제목은 담고자 하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어야 한다. 제목을 읽고 관심이 생겨 내용을 본다고 할지라도, 사업에 대한 내용이 빽빽하게 적혀 있으면 어떻겠는가? 읽는이의 손에는 장바구니가 들려있을 수도 있고, 스마트폰이 들려있을 수도 있고, 아이가 손을 잡고 있을수도 있다. 따라서 포스터의 내용은 제목 -> 3줄 이내의 개요 -> 간략한 사업 소개, 문의처 정도가 이어지는 것이 좋다. 

 

 

(좋은 포스터의 예. 이렇게 흰색, 녹색, 하늘색 등 자연적인 색상들이 모여 만들어진 포스터를 보면, 내용엔 관심이 없더라도 한번 읽어보고 싶어진다. )

 

 

글재주가 없어 기본적인 이야기들을 어렵게 풀었지만, 요지는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는 것이다. 사소해보이는 홍보 포스터지만, 제작하고 배포하는 과정에서 집중하지 않으면 많은 노력을 들여 기획한 사업들이 빛을 보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처럼, 마을 활동가는 작은 일들 하나하나에 책임감을 가지고 집중하는 태도를 가져야만 할 것이다. 내일은 정말 중요한 일인데도 지금까지 사소하게 다뤄왔던 것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돌이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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