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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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가난, 배제, 소외...

절대빈곤의 시대에는 눈에 보였다.  허술한 집들과 누추하고 초라한 행색을 한 사람들.

그래서 싸우기도 쉬웠고 문제를 주장하고 대책을 세우기도 상대적으로 쉬운 점이 있었다. 경제 성장률이 받쳐주던 산업화 시대였고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던 시대였으니 아무리 독재 시절이라 하더라도 대책은 나오게 되어 있었다. 

작은 단위의 문제도 한 사안을 해결하는 데 몇 년씩 걸리는지라 고래 심줄 같은 인내심을 요하는 한 편 그 시간을 견디어 낼만한 물질적인 준비도 필요했다.

당연히 하루 하루의 삶이 절박한 상황에서 4,5년을 한결 같이 함께 버티어낸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물론 많은 사람이 죽었고 다쳤던 험악한 상황이었다.  1980년대는 물론이고 2000년대 이후에도 강제, 폭력... 철거 현장에서는 용산 참사와 비슷한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났었다.

그래도 임대 아파트 제도를 만들어 내었고, 지역 자활센터를 설립하고 제도화 시켰으며 푸드뱅크를 만들었고 어린이 집, 공부방을 합법화, 제도화 시켜내었다. 신협을 만들었고 의료 협동조합을 조직했다. 사회적 기업을 시작했고 노동자 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했으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들어 내는 데 크게 공헌 하였다. 실업, 실업자 대책, 노숙인 대책, 빈곤 가출 청소년 대책 등을 만들어 내었고 선도적으로 그 모델을 정착시켜 나갔다. 지역 단위의 사회운동의 밀알이 되었고 사회복지를 사회운동으로 성장시켜 내었다. 

복지 관료들과 복지 재벌들의 소유물처럼 여겨졌던 공동모금회를 공정하고 민주적인 조직으로 새롭게 출범 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여러 종류의 공익 복지 재단을 세웠고 후원이나 자원봉사를 연대의 개념으로 승화시킨 나눔운동을 전개했고 주거복지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정착시켰다. 
선배들은 청계천에서 시흥, 성남으로 흩어지면서 자조, 자립, 협동, 연대를 집단적인 삶으로 증거해내었다. 나이가 들면 농촌으로 내려가 생명운동을 전개했고 대안학교를 세웠다. 

사안에 따라 종교, 노동, 시민, 사회복지계와의 연대에도 주저하지 않았으며 민주화 운동에도 항상 헌신적인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빈민운동 일부의 이야기이다.

이제 가난, 빈곤은 물리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언론 기사나 학자들의 리포트에 숫자로 표시된다. 허술하고 누추했던 집들은 그럴싸한 아파트, 연립주택 등으로 포장되었고 그들의 삶은 그 안에 감추어져 있다.

그래서 어렵다.
가난, 빈곤, 배제, 소외의 문제는 더 다양화 되고 깊어지고 심각해졌는데도 이를 다루기가 예전보다 훨씬 더 어렵다. 운동가들도 전문화 되기는 했지만 흩어져 있고 개별화 되었다. 사회복지사 숫자는 많아졌지만 행정을 통해 부과되는 일을 처리하기에도 지쳐 떨어진다. 사회의 관심도 개별적 사안, 자극적 소재에만 촛점이 모아진다. 

빈곤에 대해 사회, 경제, 정치, 문화, 종교, 철학적으로 성찰하고 비판하고 종합해내는 능력,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 사회를 설득하고 운동을 조직해나가는 열정과 능력, 이를 위해 헌신 하는 사람 등...
참 많은 것이 부족하다. 

다시 신발 끈을 붙들어 매고 달려보자... 고 생각하지만... 급격하게 변화되는 이 세계를 해석하고 대처할 만한 능력이 나부터 많이, 너무나 부족하다. 

힘에 부친다는 것을, 능력이 안된다는 것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제일 중요한 것은 열정, 기도 할 수 있는 용기...라고 위안을 삼으면서, 

이 늦은 시간에도 혼신을 다해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고 일하고 있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후배들과 동료들을 믿고 그들에게 얹혀서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라고, 다시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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