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의 자활, 도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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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당시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의 부설로 있었던 노숙인 희망의 집에 생활지도원으로 일을 했었을 때는 일주일에 한번은 문래동에 소재한 '자유의 집'에 입소상담을 다녔던 기억이 난다. 작은 쉼터의 생활지도원으로 일을 했었던 내 눈에 비쳤던 당시에 '자유의 집'은 약 1천명 정도의 노숙인을 생활하였던 수용소 같은 분위기로 느껴졌었다.

그때 나는 생활지도원이었으나 나에게 부여된 노숙인 아저씨들을 위해서 그 분들께 자활(일자리)을 제공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입소인 중에는 단순히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당시에는 공공근로와 같은 보호된 일자리 제공도 없었던 시절이어서 특별히 자격증도 없고, 교육수준도 높지 않았던 입소인들에게 일자리의 장벽은 높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노숙인쉼터의 시작은 1998년 IMF사태때는 경제적 파탄자, 사업부도자, 퇴직근로자 등 서민 가장들이 국가적 경제위기를 맞아 직장을 잃고 집에서는 도피하듯이 거리로 무작정 쏟아져 나왔던 시절에 처음 만들어졌다. 

그때는 '노숙자'이라는 신종어 조차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국가적 응급구호시설과 사회안전망은 전무한 상태였던 때다.

서울시와 사회복지계과 종교계가 급하게 논의한 끝에 급조되어 만들어졌던 것이 노숙인 쉼터였고,  약 100여개에 이르는 노숙인 쉼터들이 새롭게 사회복지전달체계의 초기모형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이명박(MB)씨가 서울시장이 되었다. 그는 시장이 되고서 초기에는 노숙인복지는 소모적 복지로 규정하였고, 당시의 노숙인 쉼터를 통폐합하거나 시설폐기를 함으로써 대폭 축소하므로써 사회적안전망의 위기가 찾아 왔었다. 물론 나도 학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에 인생에서 처음으로 실직자가 되어 1년동안 잡지사에서 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 MB는 서울시장 임기 말년에 대선에 도전하기 위해 몇 가지 공적이 필요했는데 그 때 만들어졌던 것이 '서울시노숙인일자리사업'이었다. 이것이 공공영역에서 노숙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최초로 실시했었던 대규모 정책이었다.

노숙인을 관급공사인 도시철도공사의 지하철공사장 등에 파견하여 인력지원을 하고, 공기업이나 민간기업에는 서울시에서 인건비를 보조해주는 사업이었다. 이 사업에 초기 투입인력은 최소 약 600명~1,000명에 이르렀고 해가 거듭할 수록 근로자원인원은 점점 감소하여 사업시행 3년후에는 약 200명 이내로 감소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건설현장에서 노숙인에 대해 편견과 차별이 있었던 것이며, 다음으로는 충분히 자활에 대해 사전교육 없이 노숙인을 곧바로 현장에 투입하였던 것, 즉 너무 성과를 위해서 서둘렀던 것이 나중에는 사업을 조기 종료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그후에 노숙인의 자활, 즉 일자리는 공공근로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고, 서울시는 특별자활사업이라는 1일 4시간근로/월 15일의 저강도 노동을 통해 자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현재까지 원만한 정책을 실현하고 있다.

사실 다른 것은 몰라도 서울시에서 노숙인의 자활근로와 관련하여 지속적으로 운용했던 특별자활사업지원과 같은 저임금, 저강도 일자리 지원정책은 현장에서는 매우 유익했다. 이 사업으로 노숙인 쉼터에 입소하신 분들이 최소한 구직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고, 비용을 마련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다.

더이상의 대책은 관에서 나오고 있지 않다. 

아침을여는집은 실무자가 3명 밖에 되지 않는 소규모자활쉼터이다. 실무자가 적어서 늘 입소인의 자활을 돕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운영법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이 아침을여는집과 같은 소규모시설들이다. 우리는 법인의 도움을 받아서 처음으로 노숙인자활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된 사회적기업을 2010년에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이름은 (주)나눔하우징이다. 나눔하우징은 내장수리업종이고, 이 회사가 이 업종으로 설립된 이유는 법인에서 지역사회에 주거취약계층을 돕기 위해서 약 2년간 독거노인들에게 무료집수리사업을 '평지집수리센터'를 만들어서 실시했던 것에 기인하고 있다.

그 무렵 무료집수리자원봉사에 투입되었던 인력이 아침을여는집의 일부 노숙인들이었고, 이 노숙인들에게 현장공사의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서 2년간 자원봉사를 해 주었던 정지채 소장(자원봉사자)이라는 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회사 설립부터 모든 실무를 떠맡아서 피눈물을 흘려가면서 노력해 준 활동가 남철관 국장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그는 회사라는 생소한 조직을 만드는 데부터 지기원들과의 소통과 업무, 경리, 영업까지 1인 4역을 하면서 사회적기업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었다.

 

  

 2010년 3월에 시작된 첫 영업이후 12월까지 10개월동안 발생한 매출액이 7억 4천만원이었고 도배, 장판 등 집수리만 약 900건에 이르렀다. 자본출자금 1천만원의 사회적기업이 이룬 놀라운 성과였다. 그 후 회사의 매출은 조금씩 증가했고, 초기 6명의 노숙인 쉼터에서 참여했던 분들중에 4년이 경과된 지금은 2명만이 남아 있으나 2013년까지 무려 4명이 근무를 했었다. 지금 남아 계신 분들은 과장 등의 중간관리자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처음 1년간은 전혀 회사라는 구조에 적응하지도 적응하려는 의지도 없었던 노숙인들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으로 함께 회사를 일구었다고 본다.

이 회사의 설립의 파장은 2010년 10월 같은 해에 (주)두꺼비하우징이라는 사회적기업을 설립하는 경험적 근거가 되었다. 지금은 두꺼비하우징은 노숙인과는 상관없는 마을형 주거복지회사 및 지역재생전문회사로 거듭났지만 아침을여는집의 노숙인 자활을 위한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2년 4월에 (주)살기좋은마을을 설립하면서 제2의 노숙인 자활사업에 에너지를 쏟은 것이다.

실무자는 항상 취사원을 제외하고 2명이었다. 참 힘든 도전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한다.

살기좋은마을은 당해년도에 설립된지 6개월만에 서울시혁신형사회적기업에 10:1의 경쟁을 뚫고, 서울시예비사회적기업 지정을 동시에 받으면서 명실공히 지역사회의 대표적 일자리창출형 사회적기업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주 아이템은 '아파트 택배'전문회사이며 참여 대상자는 지역사회의 취약계층(어르신)과 노숙인이다.

 2013년까지 무려 아침을여는집에서 8명의 노숙인을 투입했었으나 2년동안 철저히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은 회사가 너무나 작은 자본금 출자로 시작한 회사였기에 충분한 관리 인력을 채용하지 못함으로써 생긴 결과이다.-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말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노숙인들과 함께 자활 및 일자리 창출에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분들과 허물이 없이 지낼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신뢰감에 달렸다. 그런데 이런 신뢰감은 거저 형성되지 않는다. 정말 자신의 사생활을 포기하고 거의 1년정도는 그분들과 가족 같이 지낼 결단을 요구한다. 물론 경제적 비용의 손실도 감내해야한다. 관에서는 절대로 이런 과정을 이해하려고도 이해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늘 성과는 공무원들의 몫이다. 이런 비합리적인 양적 평가지표에 대해 사회복지계는 변화가 필요하다. 

 아무튼 그렇게 아침을여는집의 노숙인들이 현장에 투입되어서 손해를 보았던 비용도 몇 백만원을 훌쩍 넘는 손실의 연속이었다. 물론 적자회사에서 비용충당은 나의 개인적인 돈으로 메꿀 수밖에 없다. 이런 책임구조는  (주)두꺼비하우징도 마찬가지로 현재 대표이사의 몫이다.

활동가는 책임에 대해서는 자신이 지고 그 성과는 대상자에게 돌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렇게 살기좋은마을은 노숙인과 지역사회의 어르신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2014년 1월을 기점으로 지금은 노숙인들이 주인이 되는 회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미 2014년 5월 현재 아침을여는집에서 5명의 노숙인이 자신의 일자리로 여기며 회사에 출근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역에서 몇 년간 떠돌았던 노숙인들 중에 4명을 채용하여 계속 직원을 만들기 위해서 수습사원으로 훈련중에 있다. 이 아홉명 중에 이미 2명은 사회적기업의 계약직이 되었고, 급여도 일반직원들과 같은 수준이다. 또한 이 분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택배배송의 질이 높아졌으며 원청회사인 CJ대한통운에서도 인정하는 사원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어르신들은 현재 18명이 근로를 하신다. 이 분들의 무한하신 책임감과 성실성은 고개가 숙여지고 젊은이들을 숙연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제는 회사의 직원이 30명에 이른다. 물론 절반에 해당하는 어르신들은 지역의 길음종합사회복지관에서 파견되신 분들이지만, 급여는 복지관의 어르신 일자리창출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많이 받으신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많은 급여를 드릴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앞으로 닦칠 노인빈곤률 상승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회적경제의 한 틈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마을택배'의 매출도 올해는 2억 5천만원을 예상하고 있다.

정말 택배업종은 너무나 정직하고 성실한 직업이다. 이런 평가는 우리 회사뿐 아니라 이 직업 종사자들 거의 대분분에게 해당할 것이다. 이 일은 기본적으로 성실하지 못하고 머리가 좋지 못하면 일을 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지구력까지 있어야 한다. 적은 임금의 구조적 문제가 있지만, 최소한 살기좋은마을은 직원사주회사로 향후 전환시킬 것이다. 자본은 없으나 노동을 통해서 회사에 기여하신 종사자들에게 이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 회사가 나아갈 방향이고, 사회적기업으로서의 목표이다.  

 아침을여는집의 노숙인 자활을 향한 새로운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이런 몇 몇 소규모 쉼터에서 최선의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가는 활동들이 향후 서울시의 노숙인자활정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비록 시설운영에 충실하고 쓸대없이 사회적기업 같은 것을 만들어서 -무슨 성과도 못내면서- 하는 시늉만 한다고  폄하함으로써  현장 실무자의 자존심 상하게 했던 공무원들에게도, 이와 같은 도전들은 노숙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며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로써의 정당성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소망한다. 공무원들은 알지 못하는 열정과 집념이 민간에게는 있다. 이런 노력들이 개무시되지 않기 위해서는 노숙인과 같은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게는 던져지는 혁신적 도전들과 과제들이 계속될 수 있는 사회적, 정책적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민간의 쉼터 종사자 역시 이와 같은 도전들이 정말 어렵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고, 묵묵히 자기 일에 전문성을 가지고 도전했으면 한다. 지금도 어디선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몇 몇 쉼터들과 실무자들이 피눈물을 쏟으면서 매일 야근과 업무의 과부하를 참아내면서 도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 고 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책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지금보다는 한 걸음 더 진일보 시키고, 불평등을 해소하며 현장에서 사회적 대안을 창안해 내는 단초가 된다는 것에 소시민으로써의 기대와 희망을 가지면서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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