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쌍용차노조는 그토록 전투적으로 싸웠는가?

plain21의 이미지

2009.8.14

왜, 쌍용차노조는 그토록 전투적으로 싸웠는가?

이주원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았다. 

 

자동차제국이었던 GM도 파난했고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겉보기엔 쌍용차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처럼 ‘너 죽고 나죽자’는 식의 결사항전은 없었다. 

 

무엇이 달랐을까? 

 

물론 한국과 미국의 사회안전망 수준, 노동조합 문화, 전통이 달랐기도 했겠지만, 결정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및 근로조건의 격차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GM의 노동자들은 자동차회사를 떠나서 비슷한 근로조건의 다른 직장이나 직업을 구할 수 있었지만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불가능하다.

 

한국 노동시장은 이미 상식이 된 ‘성 안의 귀족들, 성 밖의 천민’이란 계층화가 노동자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00~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자 중에서 몇 년의 해고기간 동안 대우자동차보다 더 좋은 직장을 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을 좌우하는 가장 큰 변수는 사업체의 규모와 노조의 힘이다. 노동부의 ‘사업체 근로실태 조사’(2008) 결과에 따르면 동일 사업장에서 나이, 학력, 근속연수 등이 같은 조건인 노동자 집단을 비교했을 때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정규직은 비정규직에 비해 시간당 임금 총액이 31.8% 높았고, 300인 미만에서는 12.2% 높았다.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에서는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비해 32.6%가 높았고, 무노조 기업에서는 9.5%가 높았다. 사업체의 규모와 노동조합의 유무의 차가 작동한다는 반증이다.

 

한국에서 임금은 기업의 지불 능력(이것도 독과점이거나 우월적 지위-하청업체 착취-를 남용한 경우가 많다)과 노조의 교섭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자본의 이익이 허용하고, 노조의 힘이 허용하는 한 성과, 직무와 상관없이 성 안의 귀족화된 노동자들의 임금은 올라간다. 한국 노동시장의 특성상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사업자뿐만 아니라 성 안의 노동자들도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대기업, 공기업 노동조합이 추구하는 가치는 ‘고용안정’과 ‘공공부문 유지=민영화 반대’이다. 이것이 기득권을 지키는 확실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정된 고용과 높은 임금, 퇴직금(퇴직금 누진제 포함), 자녀 학비 지원, 주택 관련 저리 융자, 각종 재해보험 등을 통해 각종 ‘생애위험’을 사업체에서 해소하기 때문에 국가차원의 보편적 복지제도의 확충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고임금 노동자들인 이들에게 국가차원의 복지제도는 회사가 제공하는 회사복지에 비해 매력적인 복지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형적 노동시장의 상황이 이런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해고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솥밥 먹던 동료들이 서로 적이 되어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것도 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이해는 간다. 동의할 수 없지만.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몇 달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는 하나 회사가 정상화된다면 이 보다 더 좋은 직장은 없을 것이고, 따라서 해고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근로조건은 거대한 빈민촌의 바다에 선처럼 드문드문 솟아 있는 대부호의 저택인데, 그 누가 대부호의 저택에서 빈민촌의 바다를 나가려고 할 것인가?

 

대기업과 공기업 노동자들에게 보수정권과 자본 측의 고용유연화는 곧 죽음과 같다. 정리해고는 곧 귀족의 삶에서 천민의 삶으로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씁쓸하다. 과연 쌍용자동차 사측이 비정규직만 정리해고하려 했다면 노동조합이 그토록 가열차게 싸웠을까? 해고당한 노동자들의 심적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왠지 성 안의 귀족들만의 싸움 같아 보여 가슴이 뜨거워질 수 없었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

시선 분류: 
plain21의 이미지
소개 plain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