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과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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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3.13

낙인과 차별

이주원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꼽으라면 아프리카의 농촌 여성들을 우선 꼽을 수 있다. 그럼 아프리카의 여성의 일상생활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그녀들은 날마다 두 시간 이상 걸어서 일터로 간다. 머리에는 50킬로그램 정도의 물건을 이고, 등에는 가장 어린 자식을 업고 있다. 종종 임신한 경우도 있다. 여자아이들은 열 살부터 일을 하며 열네 살이면 결혼을 하는데, 프랑스의 농학자 르네 뒤몽에 따르면 그것은 "결혼이라기보다는 강간"이라고 한다. 실제로 사창가에 팔리는 경우도 가끔 있다. 

 

세네갈의 한 마을에서 만난 농촌 남자들은 실제로 한량들이다. 그들은 부인을 여럿 거느리는데, 곁에 두고 사는 것은 한 명뿐이고 나머지 부인들은 1년씩 도시로 보내 생활비를 벌게 한다. 그녀들은 도시의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경찰의 단속을 가장한 착취에 순응하며 막내를 등에 업은 채 하루에 열두 시간씩 일한다. 식사는 설탕물에 적신 딱딱한 빵이 전부다. 1년을 그렇게 보내고 마을로 돌아오면, 남편과 가족은 그들이 가져온 선물을 놓고 그들을 평가한다.

 

지난 백년 총생산량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상당히 풍요로운 시기였다. 하지만 세계가 부유해질수록 많은 수의 인류는 기아와 빈곤으로부터 절대적인 고통을 피할 수 없었다. 가장 부유한 나라의 1인당 소득은 1870년 가장 가난한 나라의 11배였다. 하지만 1995년에서 거기에 5를 곱해야 했다. 현재 기준으로 말해 본다면 정확한 통계에 근거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70배를 넘어 섰다고들 한다. 

 

전 지구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이 극복할 수 없는 간격으로 벌어지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절대적인 기아로 죽어 가는 아이들이 있는데, 멀리 아프리카뿐만이 아닌 내 조국 한반도 이북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현실이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최대의 민족적 수난이라고 호들갑을 떨던 'IMF 구제금융'이 사라진 자리에 '정보통신혁명'만이 민족의 미래이고 나아갈 길이라고 입방정을 떤지 얼마나 지났다고, 우리는 다시 위기의 구렁텅이에 떠밀려 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과연 건강한 삶의 모습일까! 아직도 사회곳곳에 남아있는 사회적 낙인(social stigma)이 인구학적으로 다수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경제적 소수일 수밖에 없는 그들 또는 그녀들을 냉대하고 있다. 

 

우리사회가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도 단순하다. 가부장적 남성 권위주의 문화에 익숙해져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한다. 특히 이혼녀, 장애여성, 여성노숙자, 성매매피해여성 등에 대한 낙인의 색깔은 상당히 두텁고 깊다. 인간 사회의 1/2를 구성하는 여성에 대한 인식이 이럴진대 여타의 계층들을 바라보는 눈은 과연 어떠할까. 

 

한 가지 예로 노숙인들에 대한 편견을 이야기해보자. 일반시민이 바라보는 노숙은 근본적으로 ‘노동사회에서 낙오된 무능력과 게으름 등의 결과물’이다. 물론 사회경제구조의 파행성이 노숙의 배경이라는 생각도 없지는 않지만 노숙의 구체적인 사례인 개인을 바라봄은 여전히 철옹성같이 ‘무능력과 게으름’ 등으로 결부시키고 있다. 노숙인과 마찬가지로 장애인,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우리사회는 ‘낙인과 차별’이라는 허울을 씌우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편견의 본질은 인간 더 나아가 생명을 기능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생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해야하는데, 생명체를 단순히 자본주의 노동사회의 부속물 또는 기능도구로 바라보는 것이 편견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편견과 차별의 본질인 생명체를 더 이상 노동사회의 부속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생명이 노동사회의 부속물로 전락하는 순간 사회적 약자들은 노동사회에서 필요 없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전락한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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