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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기지만 말고 내 말을 들어달라.’고 [예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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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0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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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다시 찾은 지하철 역사. 

차디찬 지하보도에 지친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해 보지만, 

행인들의 차가운 시선에 상처를 받고, 

또각또각 발자국 소리에 잠은 멀리 달아나 버립니다. 

이렇게 잠 못 드는 밤에 지쳐 술기운에라도 잠을 자고자, 

낮에 발품을 팔아 받은 돈 천 원으로 소주를 삽니다. 

옆에 있던 사람들과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안주 삼아, 

소주 한 잔에 그 날의 고단함을 달래봅니다. 

하지만 소주 한 잔으로 잠을 청할 수는 있겠지만, 

남모르는 상처를 씻기에는 그 상처가 너무도 아픕니다.

 

우리는 노숙인하면 지하철 역사에서 씻지도 않은 채 술을 마시거나 행인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분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다보니 인생실패자, 술주정뱅이, 싸움꾼 등 안 좋은 이미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 거리상담 중에 만났던 한 분의 절규를 통해 노숙인의 남모르는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을지로지하도에서 거리상담을 하던 중 키가 훤칠하게 큰 분이 내게로 와서 이러저러한 말씀을 해주셨다. 서만수(가명)씨는 30년 동안 액세서리 공장을 운영하던 사장님으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아내와 딸과 함께 살아가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작년 겨울 경제위기 속에 하청업체의 연이은 부도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평생 남에게 부탁 한 번 해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왔던 만수씨는 사채에 손을 데게 되었고,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사채빚으로 사채업자들의 괴로힘에 시달리던 아내와 딸은 집을 판 채 어디론가 가버렸고, 홀로 남은 만수씨는 올해 1월부터 남산, 서소문공원 등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자신의 옛 공장에 몰래 들어가 주인이 알게 될까 두려워 선잠을 자고 새벽에 다시 공원을 전전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심한 물집으로 하얗게 된 발을 보여 주며, 

“사람은 쉽게 적응을 한다고 하는데, 거리란 놈은 자꾸 날 밀쳐내려고만 해. 사람들도 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무슨 죄인마냥 반말로 틱틱 내뱉기나 하고. 그런데 말이야. 내가 이러면서도 왜 이곳으로 나오는지 알아? 이곳엔 선생님같이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오기 때문이야. 이미 망쳐버린 인생, 넋두리라도 없으면 벌써 한강에 올라가고도 남았을 거야.”

이야기를 마치신 만수선생님의 뜨거운 눈물과 함께 깊은 한이 다 씻겨갔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많은 단체들이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노숙인에게 침낭이며, 점퍼며 많은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대대적으로 많은 것을 해 줄 것같이 하고서 물품을 주고 난 이후 과연 그 분들과 진정으로 소통했던 단체가 얼마나 있었나 하는 깊은 아쉬움이 있다. 말 한 마디 듣고, 손 한 번 잡아주는 것이 뭐가 힘들다고 그동안 태만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이 된다. 그리고 겉모습이 다가 아님을 잊고 술 먹는다고, 인생 포기했다고 눈을 흘기며,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그 분들을 몰아세웠던 것은 아닌가 반성이 된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