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드세요. 제 눈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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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3 09:41본문
쉼터에 계신 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가슴 아픈 순간이 많다.
과거 힘들었던 경험에 대해 들을 때,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들을 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들을 때.
하지만 정작 가슴이 아픈 순간은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를 들을 때가 아니다.
자신의 과거, 현재, 혹은 미래를 직시하지 못하는 분들을 만날 때이다.
자신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 분들은 대개
스스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분들이다.
이분들은 과거를 발판 삼아 현재를 헤쳐 나가 미래를 개척하고자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의 이야기는 답답하고 먹먹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야기 하는 분은 희망이라는 것에 기대 일어서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분들과의 대화는 비교적 힘들지 않다.
하지만 자기 자신으로부터 피하려는 분을 만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과거를 털어놓지 못한다.
현재에 안주하여 살아간다.
미래를 계획하고 꿈꾸지 않는다.
이런 분들을 만나면 안타까움에 힘든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들에게 흔히 말하는 '자활의지' 혹은 '희망'을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런데 최근 한 분을 만나며 또 다른 종류의 가슴아픔을 느꼈다.
이야기의 내용은 희망차다.
"일을 소개 시켜 주셔서 감사하다.
현재 일을 잘 하고 있다.
힘 닿는 데까지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고개를 들지 못하신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신다.
단 한번도.
이분이 고개를 숙이기까지, 눈을 떨구기까지,
다시 고개를 들 수 없을 때까지, 눈을 마주치지 못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었을까.
그 세월의 풍파를 가슴에 안고 희망에 기대 일어서려고 하고 있지만
이미 떨구어진 고개와 눈은 여전히 아래를 향하고 있다.
이분은 세 명의 자녀를 둔 분이다.
본인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자녀를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자녀들과의 재회를 꿈꾸고 계신다.
훗날 자녀를 만나게 된다면 꼭 이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이제 고개를 드시라고, 눈을 마주치시라고.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하시고 눈을 바라보시라고.
이제 다 괜찮다고.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