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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에 미래는 있는가? [20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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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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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7.28

오범석

 

노숙인쉼터에 미래가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노숙인 쉼터는 물론 노숙인에게도 미래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쉼터라는 한정된 공간에 갇히는 순간 그 미래는 산산히 부숴질 수 있다.  왜냐하면 미래라는 시간적 개념을 쉼터라는 공간적 개념으로 담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미래는 희망이고 꿈이자 깨달음이다. 그 미래는 쉼터라는 공간이 있다고 저절로 생성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람은 사람을 만날 때, 자극이 생기는 법.

말장난 같지만, 사실이 그렇다.

나는 지난 3년간 쉼터에서 아저씨들을 만나는 것 외에도 교회라는 틀 속에서 목회자로서도 같은 아저씨들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가졌다. 그런 작은 대비적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쉼터는 객관적이고 형평성이 있어야 하며 원칙적이어야 하지만, 교회에서 만날 때는 주관적이고 형평성 무시, 때로는 원칙이라는 것도 무시하고 만난다.

그런데, 사람은 희한하게도 허물없이 규정에 매이지 않으면서 인간적으로 만났을 때, 서로의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나는 우리 법인에서도 노숙인 아저씨들을 과외시간에 가장 많이 접촉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고, 또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지금도 내가 활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내가 속한 법인이 발전하기 때문도 아니고, 내가 목회를 잘해서도 아니고, 또 내가 성취할 수 있는 많은 요인들이 있기 때문도 아니다.

늘 실패하는 삶 속에서 아무도 그늘이 되어주지 못하는 분들이, 잊어질만하면 찾아오셔서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 자기변명, 기뻤던 일들 등을 쏟아놓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옳고 그른 판단 기준을 가지고 만나지 앉는다.

같은 동료애로 만나고, 넉두리를 받아주는 경청자로만 만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나도 어느새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배웠다. 활동가는 대상자를 위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대상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그 분들이 죄절하고 풀죽어 찾아오면 함께 아무 말 없이 식사 한 끼를 함께 할 수 있는 정이 있어 행복하고, 그분들이 좋은 일이 있다고 찾아오시면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다. 

가장 힘들고 고단하고 인생을 포기 하고 싶을 때, 단 한 사람. 내 애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 활동가요. 그 활동가가 머무는 곳이 쉼터라면 더 좋겠다. 

활동가는 그렇게 그 분들의 벗이자, 친구이자, 묵묵히 애기를 들어주는 그런 존재이다.

 

오늘도 음성에서 아저씨 한 분이 찾아왔다. 

매우 힘든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결단해야 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우리 집 앞에 왔다고 전화가 왔다.

그러나 만나지 못했다.

나는 숙직을 서고 있고, 그 분은 이 곳까지 올 여비도 없고 에너지도 없다.

내일 아침 조찬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서 좋고, 찾아 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좋은 곳이 쉼터이다.

가장 힘들 때 마음을 열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곳이 쉼터이다.

노숙인 자활도 좋고, 자립도 좋고, 일자리 창출도 좋고, 저축도 좋지만,

상처 투성이 뿐인 마음을 담아 줄 수 있는 쉼터가 있다면

그곳이 가장 좋은 쉼터이고, 그 쉼터에서는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침을여는집이 그런 쉼터이길 바란다.

그리고 평지교회가 그런 교회이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동료들이 그런 활동가이길 바란다.

활동가의 한마디가 있어서 속 얘기 떨어 놓을 수 있어서 좋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