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윤미 엄마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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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3 10:08본문
일요일 새벽녘 울리는 전화에 잠을 깼습니다.
다급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목사님, 저 윤미삼촌입니다. 어젯밤 윤미엄마가 병원에서 죽었어요...."
이틀 전에도 만나 잘 살겠다는 다짐을 받았는데, 갑작스런 부고소식에 의료사고인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이른 새벽이어서 직접 가지도 못하고 전화로 진정하고 너무 잠시 쉬고 도움 줄 사람을 찾자고 하였습니다.
날이 밝아오기를 기다려 센터장님께 전화를 하고, 윤미엄마와 동자동에서 친분이 있던 입주민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모두 다 놀라는 목소리였습니다. 서로 연락하며 장례를 진행하자고 하였습니다. 장례식장은 국립의료원장례식장으로 정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동자동에서 여러 사람이 찾아왔다고 하였습니다. 동자동에서는 연합모임이 잘 되어 이런 장례에 대해서는 절차를 잘 아는 눈치였습니다. 센터장님과 동자동사랑방 임원들이 솔선하여 움직여 주셨습니다. 가족들에게 연락하고, 장례식장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돌보아주었습니다. 장례식장이 준비되자 동자동에서 친하게 지내셨던 분들이 찾아와 주었습니다. 장례식장은 여느 식장처럼 사람들로 분주해졌습니다. 윤미엄마가 살아있는 동안 사랑을 많이 베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가족들이 찾아오고, 나눔과미래에서도 나눔마을 주민들도 찾아오고, 아이들이 다니던 교회에서 찾아와 예배도 드렸습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벽제에서 화장을 하고, 찾아올 곳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유골함은 근처의 납골당에 안치했습니다.
윤미엄마에게는 어린 자녀가 다섯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윤미 엄마가 가고 나니 가족 중에 어린 아이 다섯명을 맡아 책임질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러 논의 끝에 다른 가족들이 있는 전라도 광주의 보육원으로 자녀들을 보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나눔마을 입주민 중에 처음 당해 보는 장례식 이였습니다. 입주민 중에 고령의 어르신도 많고, 암환자도 있지만 젊은 분이 갑자기 이런 일을 당하니 당혹스러웠습니다. 남은 가족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이 많은 집입니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조금더 적극적으로 사례관리를 하였으면 어떻했을까 하는 마음이 많이 생깁니다.
살아 생전에 누구보다 밝고 적극적이었는데, 어려운 환경이 문제였는지, 지나친 부담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좀 더 깊이 있는 관심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나눔마을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치매환자, 아들을 의지해서 살아가시는 한부모가정, 암환자, 지체장애인까지 힘든 삶이지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분이 참 많습니다. 한 분 한 분, 나름의 여러 사정으로 살아가는 여러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쉽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한분 한분들의 거처는 마련해 드렸지만, 더 이상 뭔가를 해 드리지 못하는 상황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시는데, 희망을 줄 수 있는 뭔가를 찾는 것이 사례관리자로서 해야 할 가장 큰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입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산다는 것이 이런 거지.’라고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산다는 것이 이것만은 아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면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또 어디선가, 또 한 명의 윤미엄마가 희망을 잃고, 삶에 대한 의지를 놓쳐버릴 지도 모릅니다. 잘 살아가고 있는 입주민들 사이에서 힘들어 하는 이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2014년, 또 한 해가 흘러가고 2015년이 옵니다. 이 추운 겨울, 우리 이웃이 살아가는 나눔마을이 산다는 것의 즐거움과 희망이 있는 곳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