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교수님께 [2009.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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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3 11:46본문
2009.5.14
이주원
K 교수님께
배움터를 졸업하고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하루하루 살다보니, 어느덧 ‘스승’ 그 두자를 잊고 살았습니다. 다시 배움터에 몸을 싣고 처음 맞이하는 스승의 날에 ‘스승’ 이 두자를 곱씹어봅니다.
산동네 뒷골목을 휘젓고 다니다 초등학교 입학식에 처음 본 선생님에 대한 말 못할 경외감이 불현듯 기억의 창고에서 떠오른 건, 제게 축복이었습니다. 삶의 굴곡 속에 부정적 이미지로 온통 휘감긴 ‘스승’의 모습을 존경과 신뢰, 자애로움의 대체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논어의 첫 구절을 보면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직역을 하자면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어찌 반갑지 않느냐?’라는 의미이지요.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벗의 방문은 진정 기쁘고 반가운 일입니다.
허나, 이 글귀의 숨은 뜻은 단순히 벗이 찾아와 기쁠 뿐만이 아니라 학문을 서로 나눌 스승이 찾아와 주어 기쁘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옛 선비들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을 정도로 학문에 온 열정을 다하고, 각고의 노력으로 닦은 학문의 깊이를 벗과 나눔으로써 스스로를 검증하곤 하였습니다.
작년 가을 교수님께 이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대학원 입학을 따스하게 권유했던 메일이었습니다. 메일을 읽으면서 논어의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가 무의식의 깊은 곳부터 올라와 입가에서 맴돌았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오래전 인연을 맺었지만 한 동안 소원했던 교수님께 배움을 권유받는 그 기쁨을.
입학을 하고 첫 강의를 듣는 순간, 교수님의 목소리와 몸짓 곳곳에 짙게 베인 스승의 기품과 학문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고, 전 ‘유레카’라고 나지막이 외쳤습니다. 교수님의 문하에서 학문을 하고자 한 저의 선택이 진정 올바른 선택이었음을 다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교수님께 사사(私事)받는 학문은 ‘땅’에 대한 고귀한 배움입니다. 한정된 자원인 땅을 모든 이들이 합리적으로 활용하여 공공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학문, ‘부동산정책학’. 그 어느 대학의 스승들보다 교수님의 땅에 대한 진정성을 저는 깊이 신뢰하며 존경하고 있습니다.
강의실에서 졸음을 몰아내며 강의를 듣다보면 북아메리카 인디언 추장이었던 시아스 추장의 성찰과 교수님의 가르침이 일치함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는 땅을 가벼이 여기는 자칭 문명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일침을 가했습니다. “땅을 따뜻하게 덮은 하늘을 당신들이 어떻게 사고 팔겠다는 건가? 우리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리는 소리다. 우리는 맑은 공기와 반짝이는 물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그걸 팔 수 있겠는가?”-시아스(Sealth) 추장-
인간의 몸을 받고 세상에 나왔을 때, 가장 훌륭한 축복은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이요,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며, 좋은 벗을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좋은 부모를 만나 사랑 속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좋은 친구를 만나 우정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좋은 스승을 만나 학문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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