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기도 [2008.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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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3 11:43본문
2008.6.30
이주원
소녀의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작년에 성북지역의 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에게서였다. 소녀는 월곡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며, 공부는 곳 잘하는 편이며,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소녀라고 했다.
여동생을 잘 돌보고 집안일도 잘 도와주는 착한 맏언니. 그런 소녀에 대해 이웃들은 칭찬이 자자했다. 그런데 이 꿈 많은 소녀에게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시련이 닥쳐왔다. 얼굴이 일그러지는 고통이 찾아온 것이다.
160센티미터나 되는 키에 비해 38킬로그램 밖에 안 나가는 체형을 지닌 소녀는 예전부터 잔병치레를 자주하던 병약한 아이였다. 6년 전, 소녀는 한 치과에서 교정치료를 권유받았으나, 오로지 경제적인 사정으로 치료를 미뤄왔다고 했다. 이렇게 심하게 병이 깊어질 줄 그때는 차마 몰랐던 것이다.
얼굴이 비대칭적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좌측 턱은 내려가고 우측 턱은 올라가 얼굴이 전체적으로 비대칭으로 어긋나고 있으며, 한쪽 턱이 조금씩 튀어 나오며 통증이 심했다. 이로 인해 밥을 먹는데 큰 어려움이 있어 한참 성장기 소녀의 영양 상태에 치명적인 상황을 맞게 할 수도 있었다.
상황이 악화되어 갔다. 부모는 소녀를 데리고 치과를 찾았다. 검진결과 치열궁 관계의 이상으로 악교정까지 필요한 상태로 병이 악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다 더 나쁜 소식은 거액의 치료비였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800만원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 물론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이라면 세칭 껌값일 수도 있고, 부모의 직업이 안정되어 있다면 무리는 되겠지만 낙담할 정도의 비용은 아니다. 하지만…
소녀의 집은 가난하다. 조건부 수급자 가정으로 아버지는 자활후견기관의 자활사업에 참여하여 70만원정도 월급을 받고 있고, 어머니는 부업으로 20만원가량 수입을 얻고 있다. 둘이 벌어야 100만원도 못 버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100만원가량의 빚까지 지고 있다. 집이라도 한 채 있으면 주택담보로 치료비를 빌려볼 수 있으나, 보증금 1200만원에 임대료 12만원짜리 매입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경제여건으로는 불가능하다. 월세내고, 공과금내고, 생활비, 학비를 제하고 나면 빚 안지는 게 다행일 정도의 가정형편으로써는 치료비는 먼나라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학교가 가기 싫다는 말을 자주했다. 그럴 만도하다. 감수성이 예민한 그리고 꿈이 넘치는 사춘기 소녀에게 외모는 얼마나 중요한가? 누가 봐도 예쁜 얼굴을 지닌 아이들도 미디어의 영향으로 성형수술을 운운하는 게 예사스러운 일이 됐는데, 손이나 발 아닌 얼굴이 변형되는 고통을 당한 아이가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소녀는 너무 아팠을 것이다. 육체의 통증은 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녀의 감수성으로 얼굴 변형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소녀는 더욱 아플 것이다. ‘돈’만 있으면 고칠 수 있는 병인데… 아이는 자신의 고통을 쉽게 말하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당연하다. 말해 봐야 능력 없는 부모의 마음만 더 아프게 할 뿐인데… 착한 맏이가 쉽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뿐이다.
소녀와 성북사랑네트워크의 만남은 숙명이었다. 당시 필자가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성북사랑네트원크는 사례를 접수하자마자 그 어느 때보다 성심껏 해결방법을 논의했고, 민간재단의 지원을 끌어내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움직였다.
작년 5월 18일 오전에 국립의료원 치과병동 과장님을 만나 간단한 진찰을 받고 진단서를 발급받아 왔다. 치료비용은 우리가 예상한 대로였다. 국립병원인만큼 감면의 혜택을 부탁했더니 최소 치료비/수술비 포함해서 800만원가량이 들 것이라고 했다. 치료는 1년 6개월정도 소요된다고도 했다.
얼마전 소녀를 만났다. 한결 밝은 얼굴이 그리 고마울 수 없었다. 치료를 다 마치고 밝게 웃는 소녀의 환한 미소가 기다려진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