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예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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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3 13:07본문
지도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아의 여행기 제목이다.
참 제목을 잘 뽑았다고 생각했다.
지난 2일 캄보디아 프롬펜 공항에 내렸다.
늦은 시간에 낮선 이국땅에 도착해서 주변 경관을 살펴 볼 수는 없었지만.
프롬펨공항에서 프롬펜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너무 스산했다.
느낌이 안좋았다.
원인모를 두려움조차 몰려오는 듯 했다.
프롬펜 시내는 불빛조차 과거의 비극으로 숨죽인 채 간신히 불밝히고,
텁텁한 공기는 나를 끈적하게 휘감으며 공포스런 미소를 짓는 듯했다.
프롬펨의 첫인상은 스산함, 어두움, 불청객에 대한 경계의 미소지음이었다.
알콜의 도움이 없었다면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뒤척이다. 간신히 잠들었다.
낮설은 잠자리에도 불구하고 늦잠을 생각도 못한 채 잠 깨어 숙소 밖을 나가 보았다.
어제의 스산함과 경계의 미소를 씻은 채 사라지고 여타의 다른 도시들처럼 시끌거리는 거리.
생각보다 많은 자동차, 한국인이 익숙한듯 처다보지도 않고 스치는 프롬펜 시민들.
어제 몸을 휘감았던 그 기억이 아침 해와 더불어 흔적없이 사라졌다.
프롬펜에 왔으니, 크메르루즈의 학살현장인 뚤슬랭 제노사이드뮤지엄에 젤 먼저 가보았다.
알았다. 어제밤 날 휘감았던 그 공포스런 느낌의 이유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학살당한 이 곳 때문이었음을.
죽인 이도 죽은 이도 인간이 아니었다.
론놀정권 때 미국의 폭격에 의해 부모 혹은 형제자매를 잃은 소년 또는 소녀들이
인성을 갖추기도 전에 크메르루즈군에 합류하면서 전쟁기계가 되어 아무런 죄책감없이 동포를 학살한 이 현장.
사진 전시실로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이미 백골이 되어 구천을 헤매이는 영혼이 된
캄보디아 사람들의 사진들이 죽 걸려있다.
외면하고 싶었다.
비극을 직면하기엔 '난' 너무 가슴이 아팠다.
훔쳐보듯 지나다가 한 어린아이의 사진 앞에 무의식적으로 멈춰섰다.
학살당한 2만명 중 하나였던 그 아이 사진을 보며
내 아이들이 겹쳐보이는 건 연민이었고, 고통이었으며, 분노였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엄마 품에서 재롱을 떨어야 할 그 나이에
감옥에서 죽기만 기다려야 했을 그 아이와 아이들.
흐르는 눈물이 눈 앞을 흐렸지만 바로 옆 사진은 더 큰 충격이었다.
젖먹이 않고 죽기만 기다리던 어느 엄마의 사진.
그 자리에 한참 서서 순죽인 채 눈물 흘리면 울음을 삼켰다. 한참동안...
그 엄마 스스로도 죽음의 패닉에 빠져 고통스러웠을 그 엄마...
더구나 아이의 죽음을 그것도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을 그 엄마...
캄보디아 전역에서 이 같은 비극이 매일 반복되었다니...
베트남이 떠올랐다.
베트남전쟁도 많은 인민들을 죽음으로 내몬 20세기의 비극이다.
그러나 베트남 인민들에게는 최강국 미국과 싸워 이겼다는 자신감으로이 넘쳐보였다.
적어도 동족들에게 학살당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베트남은 이후 공산화된 중국과도 일전을 불사하지 않았던가.
베트남 인민들은 공산 중국도 물리쳤다.
베트남 인민들에겐 국부 '호치민'동지가 있었다.
위대한 그리고 인민들에게 한없이 자상한 지도자가 있었던 것이다.
캄보디아는 달랐다. 캄보디아 인민들에게는 '호치민' 같은 지도자가 없었다.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그 누구와도 손을 잡았던 시아누크 왕,
시아누크의 심복이었지만 미국의 지원하에 쿠테타를 일으킨 부패했던 론놀,
사회주의 이상을 꿈꿨지만 캄보디아를 지옥의 땅으로 변질시킨 폴포트...
킬링필드의 비극은 시아누크와 론놀, 폴포트의 합작품일 것이다.
지도자는 중요하다.
한반도를 돌아봤다.
한반도 이북에 사는 동포들이 가엽다.
우리 동포에겐 폭군이 있을 뿐, 지도자는 없다.
한반도 이남에 사는 동포들이 가엽다.
우리 동포에겐 불통의 대통령이 있을 뿐, 소통의 지도자는 없다.
뚤스랭 제노사이드뮤지엄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사진을 난 찍을 수 없었다.
아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를 엄습했던 그 슬픔으로부터 빨리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었다.
뚤슬랭 제노사이드뮤지엄을 간신히 나와 숙소로 돌아와서
한동안 담배만 피웠다.
그날 저녁무렵 한국의 선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 가보았다.
아이들의 눈빛 속에 담긴 희망을 보았다.
캄보디아!
그 비극의 땅에서 우리가 할 일은 너무도 많아 보였다.
세상을 넓었고 할 일은 역시 많다.
피가 끓고 뜨거워졌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고파서...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