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풀뿌리 [예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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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3 13:06본문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나라, 대한민국. 인류사에서 그 어떤 민족도 이루지 못한 신화를 창조한 우리들. 35년간의 일제 강점을 이겨내고 민족과 국가의 독립을 이뤄낸 한국인들은 민족 고유의 근면함과 진취적인 기질로 서구사회가 수백년동안 갈등과 계급대립 과정에서 이루어낸 민주주의를 짧은 시기에 성취해냈다. 우리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희생과 땀이 배어 있는 소중한 한국 현대사의 자산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성취는 국민들의 희생과 땀이 배어 있는 자산인 동시에 노동현장, 지역사회 등지에서 이름 없이 헌신과 희생으로 청춘과 삶을 온전히 바친 풀뿌리 활동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대역사였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했던 이름 없는 풀뿌리 활동가들은 명예와 부를 욕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보상을 원하지 않았다. 민주사회에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평화롭게 삶을 영유하면 그것으로 보상을 갈음하였다.
그러나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의 시민사회는 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워보기도 전에 낡은 수구세력의 반격으로 인해 폭풍우를 만난 돛단배처럼 위태로운 상황으로 빠지고 말았다. 이는 ‘진보의 위기’라는 압축적인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왜, 이러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는가? 노동현장과 지역사회에서 튼튼한 ‘민주진지’를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풀뿌리 현장운동이 허약했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기우는 사회적인 폭풍우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풀뿌리 운동의 허약하다는 것은 풀뿌리 활동가들이 현장 운동에서 자기 비전을 잃고 목표 없이 시간을 낭비하다 현장을 떠났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사람에 없는데 현장에서 ‘민주진지’가 마련되기란 불가능했고, 70~80년대 마련된 ‘민주진지’마저 와해되었거나 와해되어가고 있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사람’이다. 우리 ‘운동’에서 과연 사람에 대한 투자를 얼마나 했는지? 과연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우리 ‘운동’은 풀뿌리 활동가들에게 헌신과 희생만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반문해 본다. 약자에 대한 애정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 높은 도덕심으로 무장한 그들도 어느 노부부의 아들이자 딸이며, 싱그러운 미소 짓는 아이들의 엄마이자 아빠인 것이다. 풀뿌리 활동가 자신은 ‘현장 운동’을 스스로 선택한 운명이기에 달게 받으며 숱한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는 있었다. 허나, 그들도 부모와 자식에게는 책임을 다하는 가족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우리 ‘운동’은 얼마나 헤아렸는지 묻고 싶다.
약자들의 사회안전망 구축에 헌신과 정열을 다 바친 풀뿌리 활동가들은 역설적이게도 사회안전망이 없는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대기업을 다니는 친구들과 비교하기에는 월급이라고 부르기가 차마 쑥스러워 활동비 혹은 상근비라는 명목으로 급여를 받고 있지만 그마저도 제때 받지 못한 마이너스 인생을 사는 그들. 역동적인 한국에서 약자들에게 좀 더 낳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기계발을 하려해도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 때문에 매번 포기하고 마는 그들. 일부 ‘운동권 스타’들은 국회의원 뺏지나 정권에 참여하여 권력의 맛을 보기도 했지만 많은 풀뿌리 활동가들은 여전히 無名의 설움을 안은 채 불투명한 미래의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게 그들이 처한 가혹한 현실이다.
사회안전망, 우리 옆의 약자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공동체의 배려이다. 그렇다면 현실의 다양한 문제에 봉착해야만 하는 풀뿌리 활동가들을 위한 ‘사회안전망’도 필요하지 않을까?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