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환경관리사업에서 어린이들의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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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3 17:02본문
월곡2동 삼태기 마을 입구에는 햇살어린이공원이 있다. 3월부터 시작한 주민면담이나 워크숍에서 어떤 주민은 “공원을 없애는 게 좋겠다.”고 했고, 어떤 주민은 “어린이들이 노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 하셨다. 사업 초기에 마을을 오가며 보니, 주민들 말대로 놀이터에는 어린이들이 없었다.
날이 따뜻해진 5월 어느 날, 햇살어린이공원을 지나는데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겨우 미끄럼틀만 하나 있는 어린이공원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여태 만난 주민들은 햇살어린이공원에 대해 회의적이었는데, 날이 따뜻해지고 나니 매일 아이들이 뛰놀았다. 면담대상, 워크숍에 참여한 주민들이 모두 성인이었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실제로 햇살어린이 공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어린이 모임의 필요성을 느꼈다.
비 오는 어느 날 마을 사랑방 앞에서 비를 피하며 유치원 끝나는 동생을 기다리고 있던 명준이가 대장이 되어 친구들을 모아 햇살어린이공원에서 어린이 모임을 하기로 약속했다. 모이기로 한 6월 12일 초등학교 1학년에서 5학년에 이르는 여덟 명의 아이들이 마을입구에 있는 햇살어린이공원에 모였다. 어린이 시절을 지나왔지만, 그 나이 또래에 얼마나 사고가 발달했을지 가늠하지 못해, 모임을 하러 가면서도 이 모임이 유효한 모임이 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면서 약속장소로 나갔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어린이들의 시각에서 삼태기 마을에 어떤 문제가 있고, 이 문제들이 어떻게 개선 되었으면 좋겠는지 어른들 못지않게 조리 있게 설명했다. 생각보다 어린이들의 생각은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었다. 예를 들면, 햇살어린이공원이 저녁이 되면 어두워져 중학생, 고등학생 언니오빠들이 비행을 하기 좋은 장소로 바뀌게 된다고 본인들이 목격한 사례를 근거로 이야기 하였다. 햇살어린이공원의 환경개선에 대해서 제안할 때는 본인들이 놀아 본 다른 놀이터와 비교하며 안전상의 이유로 또는 더 많은 어린이들의 이용을 촉진하기 위한 개선안을 제시하였다. 어린이모임의 유효성에 대한 의심을 확신으로 충분히 바뀌고도 남았다.
삼태기마을에서 어린이들의 참여를 시도한 것은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참여의 권리의 실현으로 함의하는 바가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도시에 대한 권리(1968)’에서 도시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혹자는 대의민주주의에서 투표를 통해 선출된 정치가가 도시계획의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참여의 권리가 실현된다고 한다. 하지만, 선거를 통한 참여의 경우 유권자가 아닌 시민들은 참여의 권리에서 소외되는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적극적인 참여의 권리를 말하는 퍼셀(Purcell)은 도시를 이용하는 이민자와 외국인, 미첼(Mitchell)은 광장에서 시위하는 사람들, 공공공간을 이용하는 노숙자 역시 도시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들로 보았다. 이처럼 도시에 대한 권리는 도시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 모두가 권리의 주체가 되어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는 적극적인 권리를 말한다. 이에 따라 주거환경관리사업에서 어린이 역시 도시공간을 이용하는 시민으로서 권리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1991년 비준하면서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가진 유엔 아동 권리협약 12조 1에서 [당사국은 자신의 의견을 형성할 능력을 갖춘 아동에게는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보장하고, 아동의 나이와 성숙도에 따라 그 의견에 적절한 비중을 부여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햇살어린이공원은 삼태기마을 어린이들이 이용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이 변화할 때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자신의 의견을 형성할 능력을 갖춘 삼태기의 어린이들이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있고, 그 의견에 비중을 부여하여 사업내용에도 수렴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삼태기마을의 주거환경관리사업에서 어린이 모임을 한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어린이들의 의견을 직접 수렴할 수 있었고, 게다가 어린이들이 직접 자신들이 마을 신문제작에 참여해 보고 싶다며 마을공동체활동에 참여의사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마을공동체 안에서 어린이들이 권리주체뿐만 아니라 역할 할 수 있는 인적자원을 발굴하는 계기였다.
한편, 지난 6월 고시한 주거환경관리사업 주민공동체운영회 표준운영규약 제10조(임원의 결격사유와 자격상실)에서 미성년자가 금치산자, 한정치산자와 함께 주민공동체운영회에서 임원이 되는 데 결격사유가 되는 것이 아쉽다. 실제 마을활동에서 어린이, 청소년들이 참여할 권리를 여전히 보장하고 있지만, 굳이 “표준운영규약”에 미성년자가 금치산자, 한정치산자와 함께 임원 결격사유로 명시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어린이 때부터 시민으로 참여하는 경험이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가진 나로선 비합리적으로 느껴지고 어쩐지 불평등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앞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이 더욱 더 많아지고 다양해지면 주거환경관리사업의 틀 역시 시민의 요구에 발 맞추어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