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저녁식사의 초대를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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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미래 16-07-13 14:31본문
활동가(worker)의 이야기를 해 보자. 활동가는 늘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삶에 초점을 맞추어 사는 삶이어서 일반인에게는 익숙하지 않고 평범하지 않은 삶의 여운을 남기는 직업이다. 우리 사회에서 활동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는 삶이다. 또한 관심을 가지고 뛰어드는 젊은이가 없는 대표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자기와 가족만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살아도 쉽지 않은 세상살이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상식적인 삶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오늘 아침에도 주거복지센터의 허국장님이 아침부터 주민들과 실랑이를 하고 있다. 오전에만 두 명의 내담자를 상담해야 하는데, 한 분이 전화를 열통을 하셨단다. ‘왜 지원해 주지 않느냐’고 하시는 것 같다. 늘 친절한 허국장님이 힘들어 한다.이것이 현장지향형 활동가의 일상이다. 그러나 이런 일상에는 늘 심리적 갈등에 시달리는 양면성이 있다. 예를 들어 오늘 아침의 풍경처럼 내담자와의 실랑이 속에서 생기는 고민인데, 내담자가 원하는 요구를 언제나 시원하게 해결해 주지도 못하면서 마음 한켠에서는 내담자에게 최소한의 개인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대면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가난한 이웃을 돕기 위해서 뛰어들었던 초심은 어디가고, 어느새 내담자를 판단하고 있는 입장에서 상담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현장 활동가는 이런 심리적 갈등과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과 현장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사람 사랑하는 법을 체득하게 된다. 이것을 어떤 이들은 현장의 전문성이라고도 하고 활동가의 내공이라고 표현하지만, 마지막까지 웃을 수 있는 활동가의 면류관은 가난한 이웃들의 얼굴에 웃음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일들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활동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나의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개신교 목사로서 활동가의 삶에 만족할 뿐만 아니라 그런 삶이 내 신앙의 뿌리로 생각하며 사는 종교인이다. 나를 지탱해 주는 삶의 기반은 당연히 기독교적 신앙에 있다. 그러나 현재 목회를 하는 목사로써 사회선교의 이중직을 소화하며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나이가 들면서 알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몸이 여기 저기 아프면서 동료들과 시작한 현장사역에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열정을 식지 않게 하는 것이 있다. 도움을 주었던 이웃들의 얼굴에서 희망의 웃음 꽃이 핀 것을 보았을 때이다. 지금부터 최근에 그 ‘웃음 꽃’을 본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지난 달 2월에는 아주 흐뭇하고 감사한 집뜨리에 초대가 되어 다녀온 적이 있었다. 목사가 된 후, 처음으로 주거복지활동을 통해 자활에 성공하신 가정에 입주예배로 초대를 받은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께서는 평소 출석하시던 교회도 있으신 분이었는데 평소 도움을 주시던 활동가 남철관 선생님과 나를 특별히 초대하신 것이다. 우리 둘은 토요일 저녁 어둠을 헤치며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벌판을 무려 40분동안 헤매며 약속 시간을 1시간이나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집의 초인종을 누르자 초대하신 우리의 주인공과 사모님이 밝은 미소로 우리를 맞아 주셨다. 집이 좋았다. 내심 ‘나도 이런 집에 언제 살아보나’하는 생각이 미칠 쯤, 우리 주인공께서는 집안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렇게 집안을 구석 구석 둘러보고 나서 자리에 앉았고 곧 방문 목적인 입주예배를 드렸고 축하와 함께 한상 크게 준비하신 음식을 나누며 정겨운 이야기 꽃을 피웠다.
우리의 주인공께서는 몇 년 전만 해도 영등포에서 꽤 큰 노숙인 이용시설을 전전하시며 소위 교회들을 유랑하시며 앵벌이하시던 숙자 형님이셨다. 그러던 중에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 하셨다고 한다(주인공의 말). 어느날 나눔과미래를 추천을 통해 만나게 된 것이다.
나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리의 주인공을 만났던 시간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등포의 한 쉼터에서 추천되어(사)나눔과미래에서 운영하는 임대주택 ‘나눔마을’에 입주하시게 되면서 아내와 딸과 아들, 이렇게 네 가족이 가족 재결합을 이루셨던 노숙인이었다. 참고로 나눔과미래가 운영하는 나눔마을에는 77가구의 노숙인 및 쪽방주민 입주자가 거주하고 계신다.
우리의 주인공은 나눔마을 임대주택에 입주 하신 날부터 담당 활동가가 연계시켜 드린 일자리를 통해 자활을 하신 첫 성공사례였다. 부부는 그렇게 노동을 통해서 얻은 수입의 대부분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생활비만으로 지출하시면서 저축을 시작 하셨다. 안 먹고 안 쓰시고 절약하며 사시면서 몇 년 후에는 딸을 결혼시키시며 출가 시키셨다. 그리고 아들은 대학을 입학시켰다. 그리고 얼마 전에 그동안 저축을 해서 모으신 돈과 일부 융자를 받으셔서 이렇게 좋은 분양아파트에 입주를 하신 것이다.
2006년도 서울시에서 노숙인 자활을 위해 지하철공사장 등에 일자리를 마련해 주며 시작되었던 서울시일자리사업의 초기 근로자로 투입되셨던 이래, 지금까지 그 때 연계되었던 건설회사의 현장에서 일을 하시는 분을 꼽으라면 우리의 주인공이 유일한 노숙인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대기업 건설회사의 현장 소장의 눈에 띄어 현장 반장까지 직급이 올라 가셨고, 경기도 시흥까지 출퇴근이 어려워서 주말부부로 생활하신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참 근면, 성실하신 우리의 주인공에게 고개가 숙여졌다.
그렇게 입주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활동가 두 사람은 집으로 향하는 길이 비록 멀었지만 가난한 이웃에게 받은 큰 선물, ‘웃음과 희망’이라는 선물을 받아서 뿌듯하게 귀가했던 기억이 난다.
소위 불평등의 사회속에서 벌어지는 비이성적인 계급사회의 차별과 배제의 사회 시스템을 바라보면서 사회적 약자들이 희망을 가지고 다시 재기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기를 바램해 본다. 우리사회가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인생의 실패와 좌절 가운데서도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와 희망이 제공되는 사회가 될 때일 것이다. 활동가로써 지치고 피곤해 자꾸 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 우리의 주인공을 생각하며 지금 만나는 제 2의 주인공들을 기대하며 현장으로 나간다. 집희망주거복지센터 허광행 국장님 전화 스트레스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힘내십시오. 형제여!
※ 예전 홈페이지에 있던 글을 옮겼습니다.